13-14세기, 몽골제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서 고려군주권은 상당부분 손상되고 약화되었다. 공민왕대는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조응하면서 이렇게 손상, 약화된 고려군주권의 재구축을 시도하고 더불어 고려와 몽골(원)의 관계재편을 추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민왕의 시도는 일반적으로 '반원개혁'이라 일컬어지는, 1356년(공민왕 5)에 이루어진 일련의 개혁을 주축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이 개혁은 그것이 당시 고려-몽골(원) 관계에서 갖는 획기적인 의미로 인해 그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와 관련한 최초의 연구는 20세기 초, 일본인 학자인 池內宏에 의한 것으로는 그는 元明교체기를 맞아 원의 국세가 약화한 틈을 타 부원세력을 제거하고 이루어낸 공민왕의 원에 대한 '반항운동'으로 이 개혁을 평가한 바 있다. 이후 국내에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專論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이 개혁에 대해 다루어 왔으며 최근에는 '재검토'논의까지 이루어지고 있어 1356년의 개혁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상당부분 밝혀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1388년)은 상반된 평가를 받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동아시아 힘의 공백기에 잃어버린 고구려의 고토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
本稿の主目的は、文久期前半における「皇政回復」という概念の実態を解明することにあり、島津久光の率兵上京に至る薩摩藩の動向を明らかにしつつ、封建諸侯、朝廷および西国志士の具体的な建白等の政見を検証するこ...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대일외교의 출발선이었던 광해군대 초반 대일정책을, 외형적 측면에서 통교틀의 마련, 정책추진의 안정적 기반 조성을 위한 대내적 명분의 확보, 그리고 정책 기조...
본 연구는 선조-인조대(1567-1649) 문과정시의 시행을 검토함으로써 그 제도화 과정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하였 다. 선조-인조대 문과정시는 국방의 위기와 관련하여 주로 무과의 ...
조선후기에는 先王이 승하하면 왕위를 이은 국왕은 선왕의 실록을 편찬하고 이후 보감과 『列聖御製』, 『列聖誌狀通紀』 등을 편찬하는 것이 정례화 되어갔다. 1782년 정조의 『국조보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현전하는 『日記廳謄錄』(奎12952)은 영조 연간에 화재로 소실된 『승정원일기』를 개수하기 위해 설치한 일기청의 많은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다. 본 연구는 『일기...
한국법사 연구자들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사적 연속성의 단절의 극복, 즉 현행법제는 전통법과 연결되지 못한 채 서구법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자생적 근대화의 실...
남북조시대의 혼란한 시기에 오랜 기간 동안 강남 지역에서 통치했던 양(梁) 무제(武帝)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숭불황제 중의 하나이다. 양 무제의 불교적 치적에 대해서는 이미 ...
본고에서는 정도전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이 사찬이 아니라 태조와의 교감 하에 진행된 관찬의 성격이 짙음을 당시와 후대의 자료 및 중국의 사서편찬 전통을 통하여 논증하였다. 정도전의...
個人情報保護のため削除部分ありこの論文は、八王の乱において何故に宗室が主役とならざるを得なかったのか、という疑問に対する考察である。西晋の宗室諸王のありかたが西晋以前の王朝のそれと異なる最大の点は、宗...
이하 수록된 다섯 편의 논문은 2009년 11월 12일~13일에 걸쳐 규장각에서 열린 국제워크숍(19세기 조선 사회의 역사성과 정체성 : 역사 지표의 변화양상을 중심으로)에서 발표...
『승정원일기』는 1623년부터 1910년까지의 3,243책에 실록의 5배가량 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조선후기의 실록은 5부를 간행하여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사고에 봉안하였다. 그...
publisher奈良本稿は、大和国山辺郡小山戸村(奈良県山辺郡都祁村大字小山戸)の北家の、元禄期頃の人物、北吉品の記録についての小論である。吉品は、同村の庄屋であり、また、当地域二〇か村の大庄屋でも...
향약이란 향인들끼리 마련한 약속으로 향촌의 교화와 선도를 통한 고대 이상 사회(idea society)의 구현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유입된 향 약은 조선조의...
恭親王與醇親王兩人是同父異母的兄弟,在道光皇帝的九個兒子總排行中,恭親王為第六子,醇親王為第七子,恭親王與醇親王兩人在晚清後期處於一個很微妙的關係。恭親王與醇親王兩個政治集團,自咸豐朝始,經同治朝而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1388년)은 상반된 평가를 받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동아시아 힘의 공백기에 잃어버린 고구려의 고토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
本稿の主目的は、文久期前半における「皇政回復」という概念の実態を解明することにあり、島津久光の率兵上京に至る薩摩藩の動向を明らかにしつつ、封建諸侯、朝廷および西国志士の具体的な建白等の政見を検証するこ...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대일외교의 출발선이었던 광해군대 초반 대일정책을, 외형적 측면에서 통교틀의 마련, 정책추진의 안정적 기반 조성을 위한 대내적 명분의 확보, 그리고 정책 기조...
본 연구는 선조-인조대(1567-1649) 문과정시의 시행을 검토함으로써 그 제도화 과정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하였 다. 선조-인조대 문과정시는 국방의 위기와 관련하여 주로 무과의 ...
조선후기에는 先王이 승하하면 왕위를 이은 국왕은 선왕의 실록을 편찬하고 이후 보감과 『列聖御製』, 『列聖誌狀通紀』 등을 편찬하는 것이 정례화 되어갔다. 1782년 정조의 『국조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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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사 연구자들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사적 연속성의 단절의 극복, 즉 현행법제는 전통법과 연결되지 못한 채 서구법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자생적 근대화의 실...
남북조시대의 혼란한 시기에 오랜 기간 동안 강남 지역에서 통치했던 양(梁) 무제(武帝)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숭불황제 중의 하나이다. 양 무제의 불교적 치적에 대해서는 이미 ...
본고에서는 정도전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이 사찬이 아니라 태조와의 교감 하에 진행된 관찬의 성격이 짙음을 당시와 후대의 자료 및 중국의 사서편찬 전통을 통하여 논증하였다. 정도전의...
個人情報保護のため削除部分ありこの論文は、八王の乱において何故に宗室が主役とならざるを得なかったのか、という疑問に対する考察である。西晋の宗室諸王のありかたが西晋以前の王朝のそれと異なる最大の点は、宗...
이하 수록된 다섯 편의 논문은 2009년 11월 12일~13일에 걸쳐 규장각에서 열린 국제워크숍(19세기 조선 사회의 역사성과 정체성 : 역사 지표의 변화양상을 중심으로)에서 발표...
『승정원일기』는 1623년부터 1910년까지의 3,243책에 실록의 5배가량 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조선후기의 실록은 5부를 간행하여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사고에 봉안하였다. 그...
publisher奈良本稿は、大和国山辺郡小山戸村(奈良県山辺郡都祁村大字小山戸)の北家の、元禄期頃の人物、北吉品の記録についての小論である。吉品は、同村の庄屋であり、また、当地域二〇か村の大庄屋でも...
향약이란 향인들끼리 마련한 약속으로 향촌의 교화와 선도를 통한 고대 이상 사회(idea society)의 구현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유입된 향 약은 조선조의...
恭親王與醇親王兩人是同父異母的兄弟,在道光皇帝的九個兒子總排行中,恭親王為第六子,醇親王為第七子,恭親王與醇親王兩人在晚清後期處於一個很微妙的關係。恭親王與醇親王兩個政治集團,自咸豐朝始,經同治朝而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1388년)은 상반된 평가를 받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동아시아 힘의 공백기에 잃어버린 고구려의 고토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
本稿の主目的は、文久期前半における「皇政回復」という概念の実態を解明することにあり、島津久光の率兵上京に至る薩摩藩の動向を明らかにしつつ、封建諸侯、朝廷および西国志士の具体的な建白等の政見を検証するこ...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대일외교의 출발선이었던 광해군대 초반 대일정책을, 외형적 측면에서 통교틀의 마련, 정책추진의 안정적 기반 조성을 위한 대내적 명분의 확보, 그리고 정책 기조...